박성경 장편소설 『나쁜 엄마』
김나정(소설가)
『나쁜 엄마』는 발칙하고 발랄하다. 제목이 말하듯, 문제아가 아닌 문제모(母) 이야기다. 나쁜 엄마를 통해 좋은 엄마가 무엇인지를 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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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지환은 엄마 지연옥을 ‘나쁜 엄마’라고 말한다.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이라서가 아니다. 열여덟 살에 지환을 낳은 미혼모 엄마는, 아빠가 누군지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까먹고 일곱 살짜리 아들을 마트에 두고 온 전력이 있다. 아들을 보육원에 맡겼고, 아들은 자기가 버려졌다고 생각했더랬다. 아들이 쿠키를 구워달라면, 사서 먹는 게 더 맛있다고 한다. 엄마는 서른여섯인데 로맨스와 시를 꿈꾼다. 대책 없는 철부지다. 택배라면 반품하고 환불받겠는데, 가족이니 그러지도 못한다.
게다가 이 나쁜 엄마는 뻔뻔하기까지 하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나쁜 엄마”(58쪽)라는 괴랄한 주장을 펼친다. 맹자 엄마나 한석봉 엄마도 알고 보면 나쁜 엄마란다. 맹자 엄마는 교육이란 명분으로 아이의 정서를 해치면서까지 이사를 다녔으니 나쁜 엄마이고, 한석봉 엄마는 “자식에게 불을 끄고 붓글씨를 쓰라니. 이거야말로 공포심을 조장하고 겁주는 행위”(60쪽)가 아니냐고 한다. 주부의 가사노동 시간이 학생들의 공부 시간보다 더 긴데, 대결하자는 건 자기 과시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밖에서도 경쟁하느라 힘든 세상인데, 왜 집에 와서까지 자식하고 엄마하고 경쟁해야 하느냐”(60쪽)니, 어이없지만 설득력이 있다. 엄마는 당당하게 말한다. “될 애들은 되게 되어 있어. 굳이 엄마들이 나대지 않아도 말이야.”(61쪽)
지환은 ‘헐~’ 할 테지만, 상식에 대한 반발은 깨달음을 낳는다. 엄마들은 자기 인생을 자식에게 쏟아 붓고, 조건 없는 애정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자식들로선 부담스럽다. 엄마가 널 위해서 이만큼 했는데, 너는?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나는? 자식은 엄마가 내게 해준 만큼 해야 한다는 짐을 떠안는다. 예컨대, 지환이 좋아하는 유리의 엄마는 겉보기엔 좋지만 알고 보면 나쁜 엄마다. 사랑을 빌미로 복종을 강요해서다.
그렇다면 좋은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상식에 대한 저항은, 엄마란 존재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도모한다.
흔히 엄마는 ‘천사’와 ‘보살’의 합체로 여겨진다. 굶주려도 자식의 끼니부터 챙기고 오매불망 자식의 행복만을 바란다. 이 책에도 그런 모성 신화의 예가 등장한다.
이 몸은 어머니에게 건장한 육신을 물려받은 스물넷의 사내이옵니다. 일찍이 홀로되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나의 기쁨이었어요. 어느 날 내 가슴을 뿌리째 뒤흔든 여인을 만났지요. 여인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어머니에게 데리고 가 자랑하고 싶었지요.
하루는 여인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어요. 여인은 내게 말했지요. “네 엄마의 심장을 가져와!”
하는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인이 나를 떠날 테니까요.
나는 한밤중에 곤하게 주무시는 어머니의 심장을 도려내었어요. 그리고 여인에게 달려갔지요. 너무나 빨리 달린 나머지 나는 돌부리에 걸려 심장을 놓치고 말았어요. 그러자 근심스러운 듯 심장이 내게 물었어요. “아들아, 어디 다친 데 없니?” (82쪽)
뭉클했다면, 심란한 노릇이다. 이 호러물은 ‘모성 신화’를 반영한다. 모성 신화가 위험한 건, 엄마들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해서다. 심장을 주고 자식의 무릎 부상까지 걱정해주지 못하는 엄마는 자학을 일삼는다. 나는 미달이야. 반면, 이런 조건에 걸맞지 않은 엄마를 둔 청소년은 불행하다. 우리 엄마는 왜 저래. 반면 엄마들은 친구의 아들을 탐한다. 남의 집 아이들은 잘도……
불가능한 걸 강요하면 서로들 불행해진다. 소설의 초반부에 지환은 행복을 위한 세 가지 소원을 말한다.
- 아버지 2. 쿠키 굽는 엄마 3. 예쁜 여친.
이 소원을 이뤄가는 과정을 통해, 지환은 자란다. “너 때문에 불행해. 넌 내 인생의 혹이야”라는 말을 듣고 지환은 엄마를 마음속에서 죽인다. 그 순간, 지환은 홀로 선다. 더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지환은 가장 강해진다. 이제껏 자기를 눌러댄 아이들에게 맞설 힘을 얻는다. 나쁜 엄마는 그 순간, 지환의 곁에 서 준다. ‘나’를 짓누르는 것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한 뼘씩 자란다.
(마지막에 지환의 소원들은 ‘대략’ 이루어진다. 물론 짐작과는 다른 방식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