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리뷰] 『다큐의 기술』 리뷰―다큐멘터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진모영(「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감독)

 

김옥영과 선생님

저자 김옥영은 오랫동안 방송계에서 다큐멘터리 작가로 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작가’라 하지 않고, 통상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는 김옥영 선생님이다. 부르기 애매하면 붙이는 그 ‘선생님’이 아니라, 모두가 배울 만한 ‘스승’으로서의 존칭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와 마주칠 일이 좀처럼 없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업이었지만 나와 그는 오래도록 겹치는 영역이 없었다. 그의 낯을 익히기 시작한 것은 내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라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며 방송 연출자에서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방향을 선회하던 시기였고, 그때는 지식도 없고 제작비도 궁해서 여기저기 제작 지원 행사에 뛰어다니던 즈음이었다. 그때 그는 이미 다큐멘터리 세계에서 심사위원이나 멘토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총명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본질을 찌르는 단정함

최근 가장 눈에 띈 그의 행보는 단연 『DOCKING』에 「다큐의 기술」을 연재하고, 그것을 동명의 책으로 출간한 일이었던 것 같다. 온라인에 분기마다 발간되는 이 다큐 매거진은 담론을 펼칠 공간이 없는 다큐멘터리 신에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었고, 그의 콘텐츠는 다큐멘터리 제작의 본질을 찌르는 단정함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제목에 ‘기술’이 들어가는 이 책은 통상 ‘기획-촬영-후반 작업’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의 순서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다큐멘터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맨 먼저 살펴본 뒤,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 다큐멘터리에서 ‘이야기’라고 불리는 서사의 구축과 틀에 대해 파고든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기획과 촬영과 편집과 부가 장치에 대한 기술들을 하나씩 펼쳐놓는다. 이것들을 말하는 전 과정에서 그는 98편의 명작 다큐멘터리를 예시로 거론하며 이해를 돕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다큐멘터리의 본질을 되새김질하듯 강조한다. 아마 이 다큐를 일주일에 두 편씩만 봐도 1년은 행복할 듯하다.

다큐멘터리 작가, 감독, 프로듀서로서의 40년

그는 1982년에 물정도 잘 모르는 방송 판에 작가로 입문하여 다큐멘터리와 함께 40년을 살았다. 그사이 여러 방송사의 주요 상들을 수상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방송작가계에서 그는 실력으로도 제1의 위치에서 동료 선후배 작가들이 우러르는 선배이자 스승이었고, 그들의 벗이자 리더였다.
이 책에서 그는 작가로서 평생을 일했던 ‘방송 다큐멘터리’에 대하여 예술적 작품으로서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작가주의적 관점에서의 결정적인 아쉬움을 토로하고, 변화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방송작가협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방송 다큐 작가’들과 영국에 견학을 갔을 때 ‘다큐 작가’라는 직종이 영국에는 없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프로듀서’로 고쳐 진행했는데, 영국 측에서 “한국에는 프로듀서들이 모두 여자냐?”라고 물었던 웃지 못할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방송 다큐 작가는 대체 무엇이고 어쩌다가 탄생되었고 어떻게 소비되고 착취되었는지에 대한 다큐적 성찰과 깨달음에 이르는 술회 또한 공감하며 읽었다. 한국의 방송 작가들이 글을 쓴다는 표면적 행위로 인하여 ‘작가’라는 직군으로 분류되고 호명되지만, 방송의 실제 현장에서는 작품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에까지 참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모두 연출자이고 프로듀서라는 말을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을 수행해야 감독인가? 창작자의 예술로서 다큐란 무엇인가? 남과는 다른 예술성을 표현해낸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는 이 책에서 활자로 말하고 있지만 내게는 포효하는 사운드였다. 우리는 이제 그의 포효를 읽어야 한다. 고로, 김옥영의 다큐멘터리 40년은 작가로서의 40년이기도 했지만 감독 및 프로듀서로서의 40년이라 해도 고스란히 맞는다. 그것이 그를 방송작가가 아니라 ‘다큐 신에서의 선생님’으로 존재하게 하는 결정적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에 번득 이르렀다.

다큐멘터리가 이토록 다양하듯이

총 9장으로 집필된 423쪽 분량의 이 책을 읽어보면 이 책은 전문가를 위한 것, 교과서임에 틀림이 없다. 본질과 기술에 대한 디테일이 두루 들어 있으니 말이다.
다큐 신에서는 모두 다큐멘터리를 이야기하지만 그 다큐멘터리에는 각자의 다큐멘터리만을 본류, 정본이라고 인색하게 주장하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런데 김옥영은 2014년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심포지엄에서 합의한 “최고의 다큐멘터리는 카테고리화하는 어떤 시도에도 저항한다”는 명제를 들어, 고정된 카테고리화에 망치를 내리치고 작가적 창의성과 차별성 그리고 진실성의 본질을 펼쳐 보인다. 그는 다큐 신의 수많은 편견을 두드려 패고 깨는 데 전혀 인색함이 없이 과감하다. 모두의 다큐가 다양하게 존재하는 판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진심이 읽히는 한편, 현실을 찍었다고 모든 것이 다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더 깊고 아프게 찌르는 이야기에도 귀를 더 기울이게 한다.
동시에 이 책에는 다큐멘터리스트가 아닌 일반 독자들이 다큐멘터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폭 넓은 교양으로 가득하다. 다큐멘터리의 정의를 읽는 순간부터 다큐멘터리의 문이 열리고 다양한 영화적‧예술적 장치를 이해하는 한편, 다큐멘터리의 매력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다큐 감옥’에 갇히게 되는 무서운 책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이 책은 전문가의 것이자 아마추어의 것이며, 일반 독자의 것이며, 다큐멘터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 선수들을 위한 책이다. 해답을 주는 것 같지만 질문하고, 전공서 같지만 입문서이고, 정론 같지만 반역의 논리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진실함과 절실함에 대하여

연말에 나온 그의 책을, 새해를 맞아 1쪽부터 423쪽까지 모든 활자를 차분히 읽으면서 나는 김옥영, 그의 가치와 진심의 한 페이지를 들춰본 것 같은 환희를 맛보았다. 그가 책에서 많이 사용한 단어, 진실함과 절실함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도 따듯했다. 더 깊이 성찰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여러 번 다시 읽을 가치가 철철 넘치는 이 책이 눈 맑은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손에서 보풀이 일고 손때에 절 때까지 함께하기를 바라며, 저자가 책에서 나직하게 이야기한 몇 대목을 엮어 끝을 대신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알면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이 좋을 이야기를 만든다는 공식은 어디에도 없다. 〔……〕 한 작품을 몇 번이나 돌려보며, 면밀하게 분석해보기도 했던 이 방식이 단언컨대 이론서 100권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되었다. 그것이 곧 다큐멘터리 이야기 구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나름의 방법론의 틀을 만들어주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