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리뷰] 승부와 사랑, 그 대립개념의 절묘한 교직交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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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이수 장편소설 『십번기』

이홍렬(조선일보 바둑전문기자)

내게도 중3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추측이라니. 별반 떠오르는 추억이 없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팔청춘 인생 1차 클라이맥스에 공부도, 운동도, 풋풋한 첫사랑의 스틸 한 컷도 남겨진 게 없다. 몰(沒)개성과 철저한 게으름과 소극적 성격으로 내 삶은 수돗물에 생수로 칵테일 한 무색무취의 맹물인생이 돼버렸다. 해이수란 정체 모를 작가가 불심검문에 나선 형사처럼 달려와 그런 내 원죄에 수갑을 채웠다.

그런데 이 작가는 그렇게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내 마지막 치골(恥骨)까지 건드렸다. 작품에 나오는 “너의 관전기가 내 가슴을 얼마나 뛰게 했는지……”란 대목이 그것이다. 여주인공 연희가 외국으로 떠나면서 ‘나’에게 남기고 갔던 편지의 끝 대목이다.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관전기’라…… 신문 바둑 관전기(觀戰記) 쓰는 걸로 밥을 해결해온 나로선 가슴 서늘한 추궁이었다. 제 발 저린 도둑이거나 아니면 숨어 살다 거처를 들킨 죄인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작품을 읽으면서 중학교 때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나는 그 무렵 스포츠 중계와 바둑에 관심이 많았고 TV 코미디프로를 즐겨보았다. 어른이 되면 스포츠 기자, 바둑 관전기자, 그리고 코미디 대본작가를 모두 해보고 싶었다. 죽이 됐는지 밥이 됐는지 잘 모르겠지만 앞의 두 가지는 결국 해치웠다(!) 평균수명의 끝 모를 확장을 핑계로 나는 천둥벌거숭이처럼 아직도 세번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중이다.

번기(番棋)는 형식론적으로 말하면 ‘시리즈 대결’을 뜻하지만 내용적으론 ‘올인 게임’에 해당한다. 단판 승부야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니, 사생결단으로 완벽하게 우열을 가리자는 게 십번기 개념이다. 패하는 쪽은 치수(置數), 즉 핸디캡을 조정당해 하수 딱지가 붙게 되니 ‘단두대(斷頭臺) 매치’란 표현은 결코 과하지 않다.

그렇다면 십번기의 대결 쌍방은 적의(敵意)가 생명이건만 이 소설에선 절절한 연인끼리 데스매치를 펼치고 있다. 절묘한 설정이다. 전쟁과 사랑의 대립 개념을 종축(縱軸)과 횡축(橫軸)으로 교직(交織)하는 역발상으로 바둑소설과 성장소설 두 편이 동시에 태어났다.

프로바둑은 ‘아이들’이 판치는 세계다. 제 아무리 뛰어난 천재도 나이 스물다섯만 넘으면 새파란 십대 신동에게 자리를 내주고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하지만 객석은 정반대로 노령층이다. 온통 ‘선수’의 아버지, 할아버지뻘들이 채우고 있다. 팬층의 고령화와 젊은이들의 미약한 관심이야 말로 바둑계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바둑을 대하는 사회 일부의 잘못된 시선도 문제다. 지난해 모처럼 두 편의 ‘바둑 영화’가 개봉됐는데 전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폭력과 도박이었다. 바둑은 왜곡된 외피(外皮)로만 차출됐을 뿐이다. 영화나 문학 등 이종(異種) 문화들은 철학과 과학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바둑의 다면체(多面體)적 가치를 인정하는 데 대부분 인색해왔다. 그리고 나이 든 세대들에게만 어울리는 고리타분한 도락, 협잡과 복수와 살육의 대상으로 바둑을 대했다.

이 와중에 40대 초반 젊은 작가가 나타나 인생 1차 전성기 청춘들의 사랑과 꿈, 번뇌와 성취 과정을 바둑으로 풀어냈다. 그것도 십번기라는 극한의 기법으로. 바둑을 바라보는 그의 감식안(鑑識眼)은 어떤 원로급 문인보다도 정확하면서 따듯하다. “그들은 서로를 밀어붙이고 위협하듯 에워싸다가 결국 현란하게 충돌한다. 밀물과 썰물 같은 상반된 정서의 몸짓이 수직과 수평의 마루 위에 펼쳐진다……” 모시나비와 물잠자리는 로봇 비행체 드론처럼 바둑동네를 자유롭고 활력 차게 날아다녔다.

“정석(定石)은 안내자일 뿐 교도관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둘 수 있는 힘은 유희(遊戱)에서 나온다” “승부에 집착하면 돌이 쇠처럼 무거워진다” 같은 구절은 독자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소설 속의 ‘나’는 바둑을 좋아하고, 직업은 아니었지만 관전기를 쓰더니, 종내 기자가 됐다. 이 작가는 도대체 나의 어디까지를 훔쳐본 것일까. 나도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관전기를 써보고 싶다.

한 가지 대목만 더. 과연 한판 바둑이란 “수를 저곳에 놓지 않고 이곳에 둔 우연이 누적된 결과”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빠져봤던 운명론인데 결론은 얻지 못했다. 지금 필자는 그저 연희와 ‘나’와의 다음 운명이 어떻게 전개됐을지만 못내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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