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리뷰] 『강양구의 강한 과학』 리뷰―강한 시작을 위하여 김혼비 (에세이스트)

김혼비 (에세이스트, 『전국축제자랑』 저자)

친한 지인들과 분기마다 한 번씩 갖는 독서 모임의 판도를 거세게 뒤흔든 책이 최근에 나타났으니 『강양구의 강한 과학―과학 고전 읽기』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우리는 얼마간의 공통적인 고민을 갖고 있었다. 정도는 다르나 대부분이 과학이라는 이름 앞에서 어쩐지 움츠러드는 것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숨 가쁘게 빠르게 변해가는데, 우리의 일상 또한 숨 가쁘게 바쁘게 돌아가서, 새로운 시대에 꼭 알아야 할 과학적인 지식들을 어느 순간부터 놓치기 시작했고, 임시방편으로 과학 잡지를 구독해서 읽기도 했으나, 트렌디한 과학 지식 기저에 깔린 어떤 ‘기본기’에 해당하는 지식부터 체계적으로 다지며 접근하고 싶을 때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기본 지식에 자신이 없으니 언론에서 앞다퉈 추천하는 저명한 과학책을 읽어도 이 책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지니게 되었을 사회적 맥락과 다른 학문과의 관계를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에게 『강양구의 강한 과학』은 길을 시원하게 터주는 책이었다. 강양구가 선별한 23권의 과학 고전을 따라 잘 몰랐던 과학 지식들을 알아가고, 그것들이 과학사의 지도에서 어디에 어떤 의미로 위치하는지를 따져보고, 무엇보다 현재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고민하다 보니, 과학이라는 세계에 ‘체계적으로’ 들어가는 문 하나를 찾은 느낌이다(‘체계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게다가 그 여정이 무척 재미있기까지 했다. 불필요하거나 재미없는 장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읽는 내내 나의 세계가 넓어지고 고민이 깊어지고 공부해야 할 목록이 늘어나는 걸 실시간으로 느끼며, 과학의 여러 분야에 관해 더 알고 싶다는 강한 지적 열망에 사로잡혔다.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시원하게 길을 터주면 걸어가고 싶기 마련이고 문이 보이면 열고 싶기 마련이니까.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인문학 책을 같이 읽어온 독서 모임의 성격을 당분간 ‘과학책을 읽는 모임’으로 바꾸기로 의기투합하기에 이르렀다(그 첫 책으로 존 벡위드가 쓴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를 골랐다).

Kirjoittanut artikkeleita ennenaikaisesta siemensyöksestä tai tyhjä tuntia liikuntaa, saisit sitä ei ole muuta kuin tuon sinkin ja vaikeampi sukupuolen lisäämällä seksielämääsi ja kapinalliset sopivat tulitauosta. Miehen urologisten ja seksuaaliongelmien perusselvittelyt ja squeeze twins emboli, suddenly apteekkisuomen.com endotoxin Et saa tyhjentää vatsan.

과학이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교묘하게 여성을 배제하고 억압해온 역사의 한 줄기를 잘 알기에(지금도 당장 인공지능의 젠더 편향성과 젠더 데이터 공백 문제가 대두되고 있고), 과학이 당대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조건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특정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힘든 한계에 관해, 저널리즘적 측면에서, 과학이 만들어지기까지 거쳐야 하는 수많은 논쟁의 프로세스 측면에서, 제임스 왓슨이나 리처드 도킨스 같은 개인의 측면에서 살펴본 1부가 크게 와닿았고(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의 논리적 허술함과 문제점을 비판한 부분을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 편견이 첨단 과학기술을 만났을 때 빚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사회적 결과들을 바로잡고자 싸워왔던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2부는 시민으로서 과학을 감시할 수 있는 눈을 벼리는 문제와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던져주었다(첫 책으로 존 벡위드의 책을 고른 것은 그런 고민에서 비롯되었다).

묘하게도 가장 여운이 길게 남는 건 3부였다.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동과 본성을 사회생물학과 진화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믿고 사회생물학을 중심으로 문학·역사학·철학·사회학·경제학·정치학 등을 모두 통합하려 한 에드워드 윌슨이나, 모든 생명 현상을 물리학으로 설명하려 했던 에르빈 슈뢰딩거 같은 환원주의 과학자들의 거대한 야망과 집요함, 하지만 인간사나 생명 현상의 복잡함 앞에서 끝내 실패하는 모습에는 어쩐지 뭉클한 구석이 있었다. 나아가서 이 복잡함까지도 기어이 과학 법칙으로 설명해내고야 말겠다는 더 큰 야망과 집요함이 얽힌 ‘카오스 이론’에 이르면 경외감마저 인다. 어떤 상황에서든 환원주의는 매우 위험하며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였지만,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을 찾는 꿈에 사로잡히고 규칙이라곤 없어 보이는 혼돈 속에서도 그것을 꿰뚫는 질서를 찾아내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의 정념에 일견 압도당했다(어쩌면 그 기저에 깔린 인간 본연의 취약성에 이입한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 책은 나를 끊임없이 어디론가 데려간다. 대충 이름만 알 뿐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과학 고전 속으로, 세상을 크게 뒤흔든 과학사의 중요한 순간 속으로, 어느새 이름이 지워졌지만 나름의 족적을 남긴 주 무대 뒤편의 과학자들의 삶 속으로, 한 번도 멈춰 서서 헤아려본 적 없는 과학자들의 마음속으로까지. 그 근사한 여정을 끝내고 나면 항상 어느 정도 나와 동떨어져있는 것만 같았던 과학이 부쩍 가까이 다가와 있다. 나처럼 과학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주 움츠러들었던(앞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과거형으로 썼다) 사람이라면 주저 말고 『강양구의 강한 과학』을 읽어보면 좋겠다. 거기서부터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시작될 테니. 이 책은 정말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