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리뷰 연재] 바늘 끝에 걸린 생 (소설가 구병모)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도둑맞은 편지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진경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8)

 

바늘 끝에 걸린 생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

구병모(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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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포의 작품을 그리 최선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차례로 접했다. 어릴 적 친구에게서 빌려 읽은, 세계 여러 나라의 애송시들을 수채화 그림과 곁들여 엮은 시집에서 「애너벨 리」가 처음. 얇은 양장본 시집에서 「애너벨 리」 단 한 편만을 외웠는데 이유는 그저 수록된 시들 중 그것이 제일 길어서였다. 그 뒤 「모르그가의 살인」 「어셔 가의 몰락」을 지나 「검은 고양이」쯤 이르렀을 때 포의 세계에서 성급히 하차했다. 당시 유행하던 얇은 해적판 문고본에서 범인을 잡아, 잡는 정도를 넘어 간혹 응징하기도 하는 개운하고 통쾌한 추리서사들에 익숙했던 시절,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의 공포가 아니라는 직감과 함께.
훗날 도서관에서 지금은 주제도 기억 못 하는 스터디 자료를 찾다가 「「도난당한 편지」에 관한 세미나」*로 먼저 이 소설을 알게 됐는데,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당최 모를 편지가 여왕과 장관과 뒤팽 사이에서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인데 거기에 무슨 상상계랑 상징계가 어쨌다고 하니, 이건 미친 짓이고 난 이 불가해한 삼각형 안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소설 자체는 그로부터도 세월이 더 흐르고 뒤늦게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
대부분의 독자들이 보기에 「도둑맞은 편지」의 백미는 중반 이후, 경시청장이 귀신에 홀린 듯한 태도로 수표를 끊어주고 떠난 뒤 뒤팽이 친구의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 자신의 논리력과 분석력을 유장하게 펼쳐 보이는 후반부 전체에 있다. ‘너무 뻔해서 거기 있으리라곤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누구나 손댈 수 있는 자리에 부주의하게 놓인 편지가 사실은 고도의 심리적 트릭에 따라 선택된 장소에 있었다’는, 우리 속담에서는 그저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걸로 요약 가능한 이 부분은 특히 지각심리학과 관련된 내용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1분간 흰옷 입은 사람이 몇 명 지나가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달라’는 실험자의 주문이 실은 페이크라는 것을, 연구의 진짜 목적은 흰옷 입은 군중 뒤로 사자나 곰의 의상을 입고 달려간 사람을 피험자 가운데 몇 명이나 목격했는지 알아내는 데 있다는 것을, 들은 바 있다. 그러나 흰옷 입은 사람을 세는 데 여념 없던 피험자들은 사자도 곰도 포착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단 한 통의 편지를 찾는 데 온 신경이 집중된 경시청장은 무심한 배경으로 깔려 있던 진짜 편지를 발견하지 못했고, 뒤팽은 그 지각심리학상의 함정을 역이용하여 편지를 바꿔치기해선 유유히 빠져나왔다. 한 편의 추리소설에 있어서 박진감 넘치고 역동적이며 사이다 같은 수수께끼 해결을 선호한다면, 처음부터 범인이 누군지를 알려주고 시작하며 뒤팽이 학구적으로 으스대는 게 핵심인 이 소설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 편재하고 도처에 잠복한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키기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모험을 감수함으로써 발생한 짜릿한 순간도 분명 우리 몫으로 찾아든다. 예를 들어 문학의 목적과 의미 존재를 믿었던 예전의 나라면, 결말에서 탐정의 일장 연설에 일말의 못마땅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편지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 들어 있었던 건데? 군사기밀? 연애편지? 극도의 보안과 위험성과 원 소유주의 절망감이 강조된 그 편지는, 그 존재 의미대로 역시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채 그 내용을 독자에게마저 함구한다. 기승전결의 완벽한 대구를 기대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기왕에 뿌려진 떡밥이 회수되지 않은 셈이며, 이른바 총이 등장했는데 발포되지 않은 채 버려진 것으로, 이 편지의 존재 자체가 맥거핀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짐작할 수 있는 거라곤 이 편지가 누구의 손에 들어갔을 때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뿐. 누군가에게는 위협으로, 누군가에게는 권력으로, 누군가에게는 포상금과 교환 가능한 물건으로.
그러나 그 모든 흥미로운 요소의 뒤안길에서, 나 같은 범인凡人이자 속인은, 뒤팽의 현란한 추론과 분석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우둔하게 묘사된 경시청장에게 눈길이 가고 마는 것이다. 그가 장관의 집을 샅샅이 수색한 방식을 보면, 뒤팽이 인정한 대로 수사관으로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상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눈물겨운 탐색 과정 진술에서 거론된 것만 해도 서랍 하단, 의자 다리, 탁상 상판, 커튼에 카펫에 침대보에 이른다. 빈틈을 두드려보고, 확대경을 사용하고, 심지어 옆집과 나란히 붙은 자리까지 조사했는데 그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가느다란 바늘로 쿠션들을 하나하나 찔러보기까지 했다는 대목이다. 정말…… 삽질이 따로 없어 보이지만, 실은 그것이 오늘날에도 사건 현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과학수사대의 그것 아닌가. 머리카락 한 올도 작은 손자국 하나도 놓치지 않는, 정밀성과 그에 못지않은 인내심이 요구되는 작업. 거기에 비록 우월한 인간의 천재적 두뇌와 빛나는 인식이 없더라도, 평범한 인간의 성실성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 대부분은 경시청장이 했던 것과 같은 탐침의 행위를 인생 전반에 걸쳐 수행할 것이며, 때로는 그에 따른 보람이 반드시 뒤따라오는 법도 없다는 아이러니와 마주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가끔, 대상을 향해 깊이 찌른 바늘 끝에 무언가 생소한 것, 예상치 못한 것이 걸려드는 감각을 얻는 날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어쩌면 언제 올지 모를 그런 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지도.


* 민승기 역, 「「도난당한 편지」에 관한 세미나」, 『욕망이론』, 권택영 엮음, 문예출판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