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리뷰] 간사지 이야기—더듬거리며 진실에 다가가는 목소리(임승유, 시인·교사)

『간사지 이야기
(최시한 연작소설, 문학과지성사, 2017)

임승유(시인·교사)

셋째 시간이 끝나고 가보니 윤수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오셔서 데리고 갔다고 했다. 시간을 낭비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두 시간 동안 교실에서 수학과 화학책을 뒤적일 게 아니라 양호실에서 윤수하고 있는 편이 나았을 거다. 윤수를 지키고 있던 양호실의 그 조용함과 편안함이 그런 책 속에는 없으니까. _『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44쪽

1996년에 펴낸 최시한의 연작소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한 부분이다. 20년 만에 쓴 또 다른 그의 연작소설 『간사지 이야기』를 펼치며, ‘양호실의 그 조용함과 편안함’을 포기하고 수업을 들은 교실에서의 두 시간을 낭비라고 말하던 그 소년은 어떻게 나이를 먹었을까 궁금했다. 『간사지 이야기』가 자전적 소설을 표방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무대가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했기 때문에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을 공동체적 삶에 대한 향수는 소설 전반에 짙게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공동체에서 비껴난 ‘차이’를 지닌 인물들에 대한 애정과 공감은 여전하다. 데모를 하다 몸과 마음이 망가진 ‘선호’ 형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그랬고, 마을사람들과 떨어져 외따로 살아가던 ‘물레방앗간 사람’에 대해 말할 때도 그랬다.

동네 애들한테 물레방앗간 사람에 대해 무어라고 이야기할까 생각하며 나는 학교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그가 내 허리띠를 움켜쥐고 냇물을 건네준 일이라면 몰라도, 다른 이야기는 아이들이 잘 믿지 않을 것 같았다. _『간사지 이야기』 41쪽

소설가 최시한은 그 ‘다른 이야기’를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나가는 데 능하다. 독일엔 『데미안』, 미국엔 『호밀밭의 파수꾼』, 일본엔 『상실의 시대』가 있다면 우리한테는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 있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그런 허세 섞인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허생전을 읽는 시간」은 아이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소설이었다. 소년의 섬세한 내면을 통과한 후에 우리 앞에 놓여진 1980년대 후반의 모순된 현실.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하는 백 마디 말보다 그의 소설을 한 번 읽히는 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바로 ‘다름’을 대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시각을 가지는 게 정말 괜찮고 건강하다는 것을 그의 소설은 서늘할 정도로 정확하면서도 아름답게 말하고 있다.

“사춘기도 지났는데, 넌 여전히 한밤중에 야산을 헤매던 그 얼굴이구나. 여태 그렇게 심각하게 따지면서 사니?” _『간사지 이야기』 190쪽

나중에 어른이 되어 만난 동네 누나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20년 전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세상은 무디고 거친데’ ‘시는 너무 섬세하고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상처 입은, 그렇지만 바로 그 섬세함으로 무디고 거친 세상 한 편의 진실을 말해야만 하는 영혼. 그런 영혼을 지닌 ‘나’는 소설 속 더듬거리는 목소리들에 유난히 예민하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윤수, 『간사지 이야기』에서의 ‘물레방앗간 사람’은 똑 부러지게 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르게 말한다는 이유로 놀림과 비난을 받고 때로는 외면당한다. ‘나’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의 이면, 진실을 대면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 두 소설에서 작가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에둘러 말하긴 했지만 그의 소설이 지닌 가장 큰 힘은 그 시대, 그 순간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예민하면서도 필요한 시각을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게 말할 줄 안다는 것이다. 「허생전을 읽는 시간」에서 보여준, 끝내 타협할 수 없었던 현실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간사지 이야기』에서도 놓치지 않고 가져가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가장 아끼는 목소리, 기대되는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