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리뷰] 간사지 이야기—고향 땅과 어머니와 아버지와 이야기(원종국, 소설가)

『간사지 이야기
(최시한 연작소설, 문학과지성사, 2017)

원종국(소설가)

이야기

“모든 것의 최종 형태는 이야기이다. 사실에 상상을 버무려 빚어낸 형상으로, 이야기는 무의미와 망각에 맞선다. 그리고 현재가 과거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간사지 이야기』의 프롤로그에 해당할 제1부 「간사지」 말미의 이 글에서 ‘여러 시간’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40여 년 스토리텔러로 살아온 작가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문장으로 여겨졌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이후의 작업에 대한 어떤 결기 같은 것도 느껴졌습니다. 너무 앞선 짐작일까요. 소멸 후에도 의미와 기억으로 영속(永續)될 이야기를 짓는 건 모든 작가들에게 숙제와도 같은 것이니까요.

『간사지 이야기』는 갯내 나는 간사지의 퇴적층에서 파낸 기억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연작 형태의 장편소설입니다. 작가의 유소년기에 대한 회고담이 주를 이루는데, 에필로그에 해당할 제3부 「잔치」의 화자가 이제 곧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왜냐 선생님’이 될 것으로 짐작한다면,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제일 앞자리에 놓이게 될 겁니다. 간사지에서 태어난 화자는 왕소나무 숲이 있는 ‘새울’과 바다 사이, 농사를 짓고 살지만 갯내가 켜켜이 쌓인 간척지에 살고 있는 아련하거나 애련한 인물들을 하나하나 호명합니다. 성미 누나, 물레방앗간 사람, 진석이, 선호 형, 경숙이 누나, 석탄 배달하는 운전기사, 금희, 창수 아저씨, 수복이, 청소 고모와 둘째 이모,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 “그렇게 오래되고 아름다운 게 왜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문득 사라질 수가 있는지”, 그렇게 놔둘 수는 없겠기 때문이지요.


간사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보령시 청소면 장곡리의 간사지 마을이 궁금해서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스카이뷰’나 ‘위성사진’으로 검색을 해보기까지 했습니다. 『간사지 이야기』의 문장들이 품고 있는 공간을 눈으로 가늠해보고 싶었거든요. 해발 791미터 오서산에서 발원한 진죽천이며 반듯하게 경지정리 된 장곡리의 들녘, 지금은 청소역이 된 듯한 진죽역과 청소초등학교, 그리고 보령방조제와 오천항, 뿌옇게 흐린 쑥빛 바다…… 지도에 ‘표시’된 정보는 많았지만, 제가 보고 싶었던 장면들이 거기 ‘표현’되었을 리 없습니다. 왕소나무 숲이나 호밀밭, 똥섬은 고사하고, 바다에서 몰려온 안개가 그릇에 담긴 솜처럼 둑 사이에 고여 있는 풍경이며 갯벌에 치런치런한 바닷물이며, 또 저 멀리 아슴아슴한 ‘빈섬’들을 무슨 수로 볼 수 있을까요. 미련한 짓이었지요. 그건 하늘에서 내려다볼 일이 아니고, 백삼사십 센티미터쯤의 눈높이에서, 더구나 마음으로 읽었어야 하는걸요.

아무려나 지도를 띄워놓고 『간사지 이야기』를 읽는 동안 여러 차례 유년 시절이 떠올라 제 고향 마을까지도 함께 살폈습니다. 같은 충청도라지만 작가는 서쪽 끝이고, 저는 동쪽 끝이어서, 서울까지의 거리로 치면 정삼각형을 그릴 만하지요. 말씨도 많이 달라서 서울에서 ‘모르니?’라고 물을 걸 보령에선 ‘물러?’로 제 고향에선 ‘몰러?’로 발음한다는 차이. 물론 억양까지 더해지면 눈으로 읽히는 이상일 테지만요.


어머니와 아버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순간이 생생한 저로서는 20여 년 앞선 시절임에도 『간사지 이야기』의 풍경들이 아주 잘 그려졌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지요. 아버지가 사 오신 10촉짜리 알전구가 내뿜던 빛은 환상 그 자체였으니까요. 남포등 밑에 둘러앉아 우물 속 같이 우멍한 밥상을 들여다보던 식구들의 모습은 이젠 까마득한 설화(說話)가 되었습니다. 바다에 면한 간사지와 첩첩산중의 차이는 있지만, 그 설화들 속에도 『간사지 이야기』의 ‘궁금쟁이’와 비슷한 소년이 자라고 있었지요. 물레방앗간 아저씨도 있고, 일찌감치 도회지로 식모 살러 갔다 돌아온 동네 누나도 있고, 농기계 사고로 가장을 잃고 인근 도시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웃들은 배운 게 없어 “안 가넌 게 아니구 뭇 가는” 사람들이었지요.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땅에 붙들려 살았으니까요.

다른 많은 이웃들과의 정리(情理)도 있지만, 무엇보다 애잔한 건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몸이 약해 늘 아프시면서도 “나는 안 죽는다. 너희들 잘 사는 것 보기 전까지는……”이라 되뇌시거나, 어려운 동기간을 만났을 때 “동네서 부자 소리 들으먼 뭘 혀…… 내 맘대루 돈 한 푼 쓸 수 있기를 헌가……” 하는 어머니. 그리고 당신은 “평생 검껌헌 디 갇혀 사는 거 같다구” 여기면서 자식들만은 기어이 서울로 보내 눈을 틔워주고자 했던 아버지. 『간사지 이야기』는 그 시절의 어머니 아버지께 드리는 헌사이지요. 모든 걸 희생해서 자식들을 보듬는 든든한 땅과 같은 존재. 『간사지 이야기』를 읽는 내내 애련하면서도 가슴 한가운데가 훈훈해지는 건 그 때문일 겁니다. 당신들을 잊고 살다가 때때로 우리의 시원(始原)이 아득해진 사람들에게 “그걸 여태 물르네?” 하고 묻는 어머니 아버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