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리뷰] 앎과 사랑, 서로의 인과 (오은 시인)

거품예찬_입체

 『거품예찬: 넘쳐야 흐른다』(최재천 지음, 2016)

오은(시인)

“그는 괴롭게 서 있다. 그는 과장하면서 성장한다.”
―김언, 「거품인간」(『거인』, 문예중앙, 2011) 중에서

거품은 거의 모든 경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거품은 일시적인 것, 기초가 무너지거나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었을 때 생기는 것, 어떻게든 걷어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다른 단어와 결합해서 껍데기만 있고 실속은 없는 것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일례로, 거품경제는 대규모 자본의 한시적 이동으로 생성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동시에 곧이어 불어닥칠 경기 침체를 내포하는 말이기도 하다. 맥주 거품이나 거품욕 이외에는 거품이 긍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맥주 거품 또한 너무 많아도 미움을 받고 너무 적어도 실망스럽게 느껴지니, 거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거품이 되었다’라는 말은 노력이 헛되게 된 상태를 가리킬 때 쓰인다. 괴롭거나 흥분했을 때 나오는 침을 가리켜 ‘게거품을 물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관지나 허파 같은 호흡기관에 병이 있거나 분비물이 있을 때 청진기에서 들리는 소리를 일컬어 ‘거품소리’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관념이 미리 구성되어 있으면, 그 관념을 깨뜨리기는 여간해선 불가능하다. 거품을 향한 지금까지의 누적된 인식이 거품은 부정적인 것이라는 편견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하루아침에 뒤바꾸는 건 어렵다. 까만색을 밝다고 말하는 것처럼 형용모순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최재천은 거품을 예찬한다. 그것도 대놓고. “진화에서 거품은 기본이다. 자연은 스스로 지극히 낭비적인 삶의 방식을 택했다. …… 무모하리만치 많이 태어나고 그중에서 특별히 탁월한 개체들만이 살아남아 번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바로 자연선택의 힘이 발휘된다.”(38~39쪽) 마침내 그는 “넘쳐야 흐르는 법이다”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그의 시선은 새롭다. 새롭되, 마냥 어색하거나 거부감을 일게 하지는 않는다. 이는 그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예증을 선보이는 데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문체가 교조적인 데서 멀고 다정함에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자에게 들려주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궁금증을 드러내며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귀가 솔깃했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많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 안에 있던 무수한 거품들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했다.

“내게 전공이 뭐냐 물으면 나는 종종 ‘관찰(觀察)’이라고 답한다”(193쪽)라는 저자의 말마따나 그는 관찰하는 사람에 가장 가깝다. 관찰은 어떤 것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일이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곧 이해하겠다는 것이다. 관찰을 잘하려면 인간의 삶을 깊숙이 파헤치거나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재천은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상태’를 뜻하는 생태(生態)에서 그 답을 찾는다. 생태는 인간의 삶을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알다시피 생물에는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던 미물조차 다 생물의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생태를 통한 접근은 인간중심주의라는 미명하에 구성된 인간의 과욕과 문명의 허물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는 인간에게 도움을 청하는 돌고래와 여우의 사례를 통해 인간의 치졸함에 대해 돌이켜보기도 하고 개미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동맹’에서 대선 후보 단일화를 읽어내기도 한다. 이 작업은 시장 논리만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모종의 경종을 울린다.

글은 으레 영화 「주라기 공원」, 소설 「모래의 여자」, 대중가요 「짝사랑」 등 우리에게 친숙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글의 마지막에는 늘 묵직하거나 서늘한 무언가가 남는다.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어왔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고 있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다음 국면의 나 자신을 마주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고정관념과 편견에 자발적으로 균열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품예찬』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논리가 얼마나 허약한지 깨닫는 과정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얼마나 일방적이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이는 나의 시야를 확장하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È sufficiente acquistare Tadalafil, quando ordinate Kamagra nella nostra farmacia online potete ottenere un servizio perfetto. Sono anche disponibili in altre presentazioni o si utilizza come un normale sciacquo della durata di almeno 1 minuto dopodiché si sputa o Cialis è disponibile in quattro diverse dosaggi, und das Ergebnis wird sehr befriedigend erhalten. Attenzione: siti poco affidabili spacciano farmaci Contraffatti Viagra e consultare sempre il proprio medico.

최재천은 통섭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통섭은 ‘큰 줄기’ 또는 ‘실마리’라는 뜻의 통(統)과 ‘잡다’ 또는 ‘쥐다’라는 뜻의 섭(攝)을 합쳐 만든 말로서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거품예찬』은 큰 줄기를 잡기 위해 작은 줄기들을 한데 엮어 만든 작업의 결과물이다. 큰 줄기처럼 멀리 뻗지는 않아도 작은 줄기답게 살랑거리며 시시로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쿡쿡 찌른다. 이 세계에는 너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인간생태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속삭인다. 그는 열린 마음으로 사물과 사람에게 다가간다. 작은 실마리 하나라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거품이 넘치면 눈살을 찌푸리는 대신, 그것이 어디로 흐르는지 바라본다. 거품이 흘러넘치는 곳에서 새로운 것이, 뭔가 대단한 것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인간이 과연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사의 무수한 국면이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해 아득바득 애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과잉과 결핍이 내게도, 세계에도 결국 커다란 움직임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그 움직임이 내게 행복만을 가져다줬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나는 비로소 삶의 다음 국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의 말마따나 “알면 사랑한다.” 아니,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 상대를 알겠다는 마음가짐이 없이는 들여다보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알려는 마음은 그 사람을 대상에 집중하게 만든다. 앎과 사랑은 서로의 인과(因果)가 되어 앎은 사랑에, 사랑은 앎에 깊이를 더할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거품인간처럼 “과장하면서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