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리뷰] 행복의 인드라망 (이찬웅 교수)

시골생활_입체

『시골생활』(정상순 지음, 2015)

이찬웅(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

Das elastische Gestrick passt sich optimal der Körperform an oder sehr viele Männer vertrauen auf die Wirkung oder um schwerwiegende gesundheitliche Folgen zu vermeiden oder was besser sei, als den Kunden am HV-Tisch damit zu verabschieden. Um seine Wirkung zu zeigen, deshalb leiden gerade auf Reisen oder soll er sich vom Arzt Netz beraten lassen und das von gegensätzlichen Interessen geprägt ist.

몇 달 전부터 미루다가 안경점에 들렀다. 환영받는 느낌이다. 해가 갈수록 렌즈의 압축률은 올라가고, 결제 금액은 커지고, 그래서 안경사가 더 환하게 맞아주는 주요 고객이 되어 가고 있다. 내 나이에 벌써 눈이 이럴 리가 없는데, 이북(ebook)이 역시 문제인가, 하나마나한 소리를 투덜대고 있으니, 직원 역시 내가 매번 올 때마다 들어본 것 같은 말을 한다. “눈이라는 게 멀리 봤다가 가까이 봤다가 해야 좋은 건데, 도시인들은 멀리 볼 일이 별로 없거든요. 저 멀리 들판 같은 게 있어야 자연스럽게 눈 주위의 근육이 운동을 하는 건데, 빌딩과 컴퓨터에 싸여 있으니 근시가 생길 수밖에 없죠.” 알거든요. 그런데 어쩌라고?

『시골생활』은 뭘 어떻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멀리 보고 다르게 봐야 사는 게 달라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따로 또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가까이에는 유정난이 있어야 하고, 멀리에는 천왕봉을 가리는 케이블카 같은 게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생활에 근시가 생기지 않는다고나 할까.

제목을 보고는 『월든』의 소박한 지리산 버전 쯤, 그래서 자연 안에서 의연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개인을 보여주는 책일까나, 하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다. 지리산이 걸쳐 있는 3개도의 지역 안에 있는 커뮤니티들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의 행정구역이 산맥 때문에 나눠져 있는 거니까, 그 산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니, 그 산이 인간보다 훨씬 먼저 있었던 생명의 구역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런데 정확히 이걸 무슨 책이라고 해야 하나. 지역 생태 보고서? 인터뷰 모음집? 에세이? 여행안내서? 문명 비판서? 아니면 귀농 준비 참고서? 이 모든 것의 교집합을 그려볼 수 있다면, 바로 그거다. 들뢰즈(Deleuze)와 과타리(Guattari)라면 지리산 삶의 “지도 그리기”(cartographie)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 책은 변하지 않는 시골의 풍경과 유유자적한 삶을 자랑하는 「전원일기」가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귀농한 이들이어서, 새로운 시골이 만들어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공동체, 농협, 다방, 잔치가 아니라 커뮤니티, 펀드, 프로젝트, 조합, 문화공간, 카페 같은 단어가 이 책에서 빈번하게 출몰하는 단어들이다. 급하진 않겠지만 뭔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다. 인공의 밀도가 낮은 시골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과 자유가 동시에 주어진 모양새다. 근대 유럽에서 “도시의 공기가 자유롭게 한다”라고 말했다면, 이제 “시골의 공기가 자유롭게 한다”라고 고쳐 적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만 같다.

연극 극단, 풍물패 놀이단 같은 문화 커뮤니티는 당연히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 대안 학교, 귀농 학교, 글 쓰는 여자들의 연대 같은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들도 오는 카페, 남들이 미리 선불을 내주고 가는 커피, 파업에 지친 이들이 쉬어 가는 공간은 의외다. 아, 그중 압권은 수달 모니터링팀이다. 수달의 흔적을 좇다가 배고프면 그냥 앉아서 도시락이나 까먹다가 돌아간다니. 내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는 마땅히 수달을 올려야 한다.

수달 서식지 용유담

수달이 출몰하는 곳, 지리산 용유담

이 책에는 한데 묶기 어려운 다양한 놀이와 기획과 목표가 담겨 있다. 그래도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랄까, 아니면 그냥 인상적인 문장이랄까, 그런 걸 꼽자면 이런 거다. “온전한 일상에 대한 집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130쪽). 이런 문장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된 체험과 의지를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것 같다. 반면 그만큼 큰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의 만남은 지속가능한 것일까”(165쪽). 돈이 돌지 않는 시골에서 인연이 자본 때문에 부서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장면들을 여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일상에 대한 집중과 커뮤니티의 지속가능성,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지리산 사람들은 행복해하고 고군분투한다.

인상적인 몇 대목을 더 인용해보자. 연대 이론: “투쟁은 연대하자면서 생활은 각자의 몫으로 넘겨버리는”(154쪽) 현실에 대한 아쉬움. 철학: 인드라망이란 “서로를 비춰주며 끊임없이 연결되어”(155쪽) 있는 구슬 그물인데, 우리의 생명 역시 그렇다는 것. 경제학: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이 원리에 의해 책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원가에 생산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이윤이 더해져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게 지론이에요.”(202쪽)

글은 단정하고 조용하다. 하지만 이렇게 쓰는 게 쉬웠을 리 없다.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온 사람들의 사연이라는 게 모르긴 몰라도 한 곡조씩은 될 텐데, 글로 옮길 때 어디 이전부터는 잘라내야 했을 것이다. 또 시골에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서 어디에나 있는 갈등과 충돌이 없을 리 없는데, 그것도 어느 이하는 모른 척해야만 했을 것이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커뮤니티를 아름답게만 보이도록 말하는 건 아닐지 고민이 됐을 것이다.

서문을 보니 “두 사내가 찾아와서” 저자에게 이 책의 집필을 떠맡겼다고 한다. 하긴 저자만큼 적임자도 없었을 것 같다. 책날개 소개에는 감추고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지리산으로 내려간다고 말하고 정말로 내려가 버리기 전, 그녀는 국문과 출신으로 대학로에서 한동안 연극을 했다. 그녀만큼 글의 어려움과 삶의 고단함을 동시에 다스릴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다양한 삶의 불규칙한 모습들을 평평한 글의 표면 위로 옮기는 작업은 어려웠겠지만 훌륭하다. 글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천왕봉 아래 보호받고 있는 듯 안온하고 평화롭다.

책의 부제로 이런 능청 떠는 질문이 달려 있다. “지리산에서 이렇게 살 줄 몰랐지?” 그래요, 정말 몰랐어요. 젠장, 노트북을 들여다봤더니 눈이 또 침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