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이은용(소설가)
손홍규 성장 소설,『이슬람 정육점』
호기심은 제목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슬람과 정육점, 돼지고기를 써는 무슬림이라니…… 그것은 근엄한 스님이 정좌를 하고 고기를 뜯는다거나, 성스러운 종소리가 울려야 할 성당에서 댄스곡이 흘러나오는 것 이상으로 낯설고 불편한 상황이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고 모순된 단어가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째서? 왜?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
“내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의 의붓아버지는 우리와는 너무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다른 외모, 다른 언어, 다른 종교. 우리의 (왜곡된) 눈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사실처럼 자리 잡아 그들의 모든 것이 두렵거나 피해야 할 것들이다. “하산 아저씨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해외로 입양되는 줄 알았다. 솔직히 두려웠다”(16쪽)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하지만 이야기는 ‘다름’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음’을 향해 간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고국인 터키로 돌아가지 못하고 눌러 살게 된 하산 아저씨를 비롯해서 야모스 아저씨, 안나 아주머니, 유정, 맹랑한 녀석, 대머리, 그리고 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흉터를 가지고 있다. 몸에 있는 흉터로 인해 그들 인생의 상처를 알아보는 이들, 영혼의 귀로 서로의 소리를 듣는 이들, 결국에는 흉터로 하나가 되는 이들.
그들의 상처와 흉터에 가슴 한구석이 시리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따뜻하게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던 것은 소설이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느낌 때문이다.
상처투성이인 아이의 입에서 나온 “사랑해요. ……사랑한다구요!”(236쪽)라는 고백.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들어온 걸 느끼며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아이는 근원을 모르는 흉터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성장한다. 그 순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뻐근하다.
이들의 상처와 사랑은 감각적인 그림 같은 문장과 만난다. 입체파 화가의 그림을 보듯 모순적이지만 묵직한 내면과 주제를 담고 있고, 인상파 그림처럼 시각에 따른 이미지를 살려 낸다. 향이 좋은 차를 마시듯 천천히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씁쓸한 상처의 첫맛은 따뜻한 느낌으로 바뀌며 가슴 저 아래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가끔은 책을 내려놓고 두 눈을 감은 채 크게 숨을 들이마시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상처가, 그들의 피가, 나에게로 흡수되는 느낌이 든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 안의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적이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인물들은 그렇게 살아서 내 주위를 맴돌고 스쳐지나간다. 그들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아니고 바로 내 자신이며 나를 둘러싼 주위의 모든 것들이다. “지상에 단 일 초를 머물더라도 상처 입지 않을 수가 없”(111쪽)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피를 가졌다. 거기에 피부색이나 종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만들어가는 스크랩북의 얼굴이 증명해주는 것처럼.
“스스로를 사랑하는 건 최후의 보루다. 세상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다 지친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말이다. 그렇게 사랑하다 지쳐서 더는 사랑할 게 없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229쪽)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세상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도 사랑받고 있는 거라고. 지쳐서 스스로를 사랑하기 이전에 우리는 충분히 타인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세계를 입양”할 수 있기를. 열린 가슴으로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기를.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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