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리뷰] ‘십번기’의 무대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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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수 장편소설 『십번기』

하상만(시인)

『십번기』를 두 시간 만에 읽었다. 속독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그어가며 천천히 읽는 편인데 그런 것을 하고도 다음 문장을 읽고 싶어 내 눈이 급했다는 뜻이다. 밑줄을 긋지 않고 깨끗하게 보는 친구에게 이 책을 권했더니 그는 내가 천천히 차를 마시고 소설을 음미하는 사이 금방 읽어버렸다.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책을 덮으며 말했다.

“재밌다.”

구글에서 매교 다리를 찾았다. ‘정훈’이와 ‘연희’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헤어지곤 하던 곳이다.

“가볼래?”

“좋아.”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수원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 처음으로 즐거워지는 순간이었다.

매교를 향하는 길은 소설처럼 번화한 곳이 아니다. 주인공과 함께 나이를 먹었고, 주인공보다 더 일찍 태어난 곳이라 훨씬 더 늙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시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젊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람들은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구시가지라 불렀다.

남문(팔달문을 이렇게도 부른다)은 구시가지의 상징이다. 한때 수원에서는 ‘남문에서 만나자’는 말이 유행어였다. 젊은 남녀들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모두 이곳에 모였다. 근처 화성이나 동탄에서도 사람들은 몰려왔다. 소설에 따르면 근처에 롯데리아가 있어야 했다. ‘다면기’를 끝낸 주인공들은 기념으로 롯데리아에서 밀크셰이크에 햄버거를 먹는다. 다면기는 스승이 여러 명의 제자와 동시에 바둑을 두는 것인데 한 스승과 바둑을 두고 있지만 제자들은 배우는 것이 다 다르다. 이 경기에서 ‘정훈’이는 1승 1무 1패, ‘연희’는 3패를 한다. 함께 경기에 참가했던 ‘고 형’은 1승 2패다. 실력이 가장 뛰어난 연희가 3패를 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3패를 하고도 아무런 동요를 하지 않는 연희가 정훈이의 눈에는 더 이상하게 보인다. 우리가 경기를 하는 것은 보통 이기기 위해서다. 그런 보통의 생각을 가진 이가 정훈이었다. 하지만 연희는 게임을 대하는 다른 방식이 있음을 정훈이에게 알려준다.

“항상 이길 순 없어. 근데 항상 즐길 순 있잖아. 즐겼는데 왜 기분이 나빠?”

그렇게 연희가 말해도 정훈이는 믿을 수 없어 되묻는다.

“너 정말 져도 억울하거나 그렇지 않단 말이야?”

롯데리아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롯데리아가 아닌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문 근처 롯데리아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내 눈앞에 서 있는 롯데리아가 바로 소설 속의 롯데리아라고 믿기로 했다. 그러니까 1987년 중학교 3학년인 정훈이가 다면기를 끝내고 방문한 장소다.

롯데리아에서 펼쳐진 주인공들의 대화는 모두 밑줄을 그을 수 없어서 따로 페이지를 접어 두었다.

“고 형이 사범에게 뭐라고 물었는지 기억나?”

“물론이지.”

친구는 고 형이 정훈이의 포테이토를 케첩에 찍어 먹는 모습을 시늉하며 말했다.

“바둑을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는 힘이 뭐예요?”

나는 사범처럼 대답했다.

“도망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둘 수 있는 힘은 결국 유희에서 나와. 이게 어려운 숙제라든지, 완수할 책임이라든지, 막중한 사명이 되면 끝까지 하기 힘들어. 대부분 도망치고 싶지. 그러니까 끝까지 놀아야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유희여야 해.”

‘유희’라는 단어를 대하는 정훈이의 모습이 귀엽다. 정훈이는 ‘연희’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 혹시 한자로 ‘유희’ 쓸 줄 알아?”

내가 연희에게 기대한 대답은 ‘응’이었다.

그러나 연희는 ‘아니’라는 대답을 함으로써 장면의 더 깊은 의미를 만들어낸다. 알고 있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다르다. 정훈이는 ‘유희’라는 단어를 한자로 쓸 수 있다. 연희보다 국어를 좀더 잘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게 정확히 삶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쓸 줄 모르는 연희는 오히려 그렇게 살 줄을 안다. 정훈이보다 공부를 못하는 연희가 정훈이를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이끌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에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은 다른 것이다.

나는 롯데리아 맞은편에서 ‘수원기원’을 발견했다. 소설 속에서 기원은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의 인간들을 보여준다. 학문을 대하듯 진지하게 바둑을 두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확천금을 꿈꾸듯 도박으로 대하는 사람. 시장 바둑의 강호 ‘장 사장’이라는 인물은 후자에 속하는 인물로 바둑 매너가 나쁘기로 유명한 악당이다. 불리할 때마다 더러운 매너를 부린다. 하지만 이 인물은 내 기대를 배반하고 최고의 악당의 반열에 머물지는 않는다. 최고의 악당은 예상치 못한 사건을 통해 밝혀지는데 원래 악당들이란 우리 인생에 그렇게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준다.

‘십번기’는 열 번 바둑을 두어 승부를 가리는 바둑 경기의 한 형식이다. 정훈이와 연희는 이 열 번의 경기를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 정훈이는 십번기를 전투로 생각한다. 밀리면 연희에게 무릎을 꿇고 졸때기가 될 거라 생각한 나머지 목숨을 걸고 경기에 달려든다. 이런 정훈이에게 연희는 이렇게 말한다.

“전투? 그래도 바둑과 사랑은 서로 마주보며 하는 거야.”

『십번기』는 정훈이의 성장소설이다. 경기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한판을 끝내고 지나온 판을 다시 생각함으로써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정훈이가 되어간다. 정훈이와 연희는 한판이 끝날 때마다 쪽지를 주고받는데 이 장면들이 참 귀엽게 펼쳐진다. 쪽지를 주고받는 일은 바둑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많은 명언들을 만들어낸다. 그중에 몇 개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어떤 마음을 가지려 애쓸 필요는 없고 차라리 마음을 비워야 해. 승부에 집착하면 손가락에 쥔 돌이 쇠처럼 무거워져. 반대로 마음을 비우면 어느 순간 돌이 반짝거리지, 유리알처럼.

―바둑 잡지에 실린 그것은 작년 학생왕위전 우승자가 금메달을 걸고 두 팔을 한껏 들어 올린 사진이었다. 정말 양팔을 치켜든 모습은 벌을 받는 모습과 흡사했다. 그러고 보니 챔피언이란 스스로에게 많은 벌을 내린 사람일지도 몰랐다.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야. 이해할 수 있는 걸 이해하는 게 무슨 이해야? 그냥 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거야. 우리 아빠는 늘 그랬어. 간혹 내가 울면서 엄마가 도망 간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징징거리면…… 그냥 엄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면 된다고.

―우리가 누군가에 의해 이 세상에 던져진 돌이라며, 던져진 돌이 자신의 궤적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있을지 새삼 미지수로까지 여겨진다. 한 판의 바둑도 결국 수를 저곳에 두지 않고 이곳에 둔 우연이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누군가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생의 진언 같은 이 말들은 청소년 소설이 결코 청소년만의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우리는 ‘백 계단’으로 향했다. ‘백 계단’은 팔달문에서 팔달산으로 이어지는 계단이다. 정훈이와 연희는 영화 관람을 마치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들이 「더티 댄싱」을 보았던 ‘중앙극장’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오랫동안 흉한 빈집으로 우두커니 있다가 최근 남문의 젊음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 끝에 메가박스로 새로 태어났다.

동년배의 연애라고 하면 연애에 있어서 여자가 정신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엔딩 신에서 정훈이는 ‘여자를 두 팔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하려면 팔 힘이 얼마나 세어야 할까’ 그 정도를 생각했는데, 연희는 ‘그 남자는 여자를 날게 해줬어’라고 표현한다.

“넌 뭐가 재밌든?”

백 계단을 오르며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잔잔하게 재밌는 부분이 많아서 하나를 집기가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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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뜸을 들인 친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미국으로 간 연희와 한국에 있는 정훈이가 편지로 마지막 판을 두는 것도 재밌던데.”

그들은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마지막엔 꼭 자신이 바둑돌을 놓는 위치를 적었다. 정훈이는 그 위치대로 방 한쪽에 놓인 바둑판에 돌을 놓아두었다.

하지만 마지막 판을 완성하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진다.

“넌?”

친구가 내게 물었다. 나는 정훈이의 마지막 편지를 이야기했다. 그 편지는 정훈이의 어머니가 방 한쪽에 놓인 바둑판을 치워버리고 난 후 쓴 것이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한 것은 정훈이가 바둑에 빠지기보다 공부에 빠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연희야, 나는 오랫동안 행복을 오해했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아무런 방해도 없는 것을 행복이라 착각한 거야. 그런 일은 드물기 때문에 드물게 행복했어. 이제는 흑 돌과 백 돌이 번갈아 놓이듯 행복 옆에 불행이 따라붙는다는 걸 알아.

행복이란 훼방꾼이 전혀 없는 게 아니라 훼방꾼에게 눌리거나 휘말리지 않고 적절히 대응하는 자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그렇게 끝없이 다가오는 불확실한 것들에 적절히 반응하도록 바둑이 우리를 연습시킨 것이겠지.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늘 새롭게 방향을 찾아가라는.

연희야,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뜨거운 우리의 승부는 이제부터일 거야. 우리의 의지로 다가올 시간들과 뒤엉키며, 우리의 몸으로 닥쳐올 사건들과 반응하며 만들어가는 거겠지? 그것이 우리가 맞이할 십번기의 마지막 한 판일 거야.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꿈을 위해 돌을 놓으며 한 사람은 기자로, 다른 한 사람은 무용수로 15년 만에 다시 만난다.

우리는 매교 다리에 도착했다. 편의점에서 나온 불빛만이 매교 다리를 간신히 비추고 있었고 몇 미터 앞은 무서운 느낌이 들 정도로 캄캄했다. 시간은 흘렀고 세상은 변했고 신시가지는 구시가지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의 기억도 이렇게 어둑해지고 캄캄해진다. 이렇게 캄캄한 어둠 속에 누군가의 아름다운 첫사랑이 있었다니 『십번기』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수원을 아름다운 순례지로 만든 소설이었다.

나는 해이수의 모든 소설을 읽은 독자다. 그의 단편에서부터 장편까지 모두 읽었다. 단 한 편도 시간을 빼앗겼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읽을 때마다 가슴속에서 찬란한 빛을 오래 느끼곤 했다. 그것은 충분히 아름다움이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십번기』도 그런 소설이었다. 십대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와 동시대를 살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에 밑줄을 긋는다.

중학교 때 바둑을 잘 두지 못해서 늘 괴로웠다. 그런 갑갑한 나날들이 26년 후에 이렇게 소설로 풀려나올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나는 바둑보다는 바둑 두는 사람들을 더 좋아했고, 기원보다는 기원 근방을 더 선호했던 것 같다. 살면서 잘 못한 것들이 의외로 살아가는데 힘을 준다.

나름대로 십대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 시절엔 사소한 것들도 한없이 찬란하거나 암울하게 다가오고, 가슴 한쪽에서는 뜨거운 불길과 차가운 물길이 뒤섞였다. 십대를 거치지 않은 어른은 없으므로 모든 어른은 화흔(火痕)과 수흔(水痕)으로 도배된 기억의 방을 한 칸씩 가지고 있다. 성장소설이 세계문학의 엄연한 한 축을 담당하는 이유도 그런 공감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글쓴이 소개

2005년 『문학사상』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가가 되었습니다. 시집『간장』(실천문학사)과 청소년 교양서 『과학실에서 읽은 시 1, 2』(실천문학사) 등을 썼으며 교단 문예상, 우수문학독서감상문대회 대상, 제9회 김장생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지금은 수원 청명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