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리뷰] 만만한 수필? 만만하지 않는 수필 읽기 (이영지 선생님)

수필로배우는글읽기_입체

『수필로 배우는 글읽기』(제3판)
(최시한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6)

이영지(거제 지세포중학교 교사)

문학의 갈래에서 수필의 자리매김은 다양하지만 독자들은 수필을 만만하게 읽고 만만하게 쓸 수 있는 글로 받아들인다. 기법과 장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는 쉬운 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만만한 글들을 얼마나 잘못 읽었는지 발견하고는 놀란다.

먼저 놀라게 한 점은 출판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글읽기의 길잡이로 본서를 능가할 저서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숫제 글읽기에 대해 이렇듯 깊고 논리적이며 섬세하게 읽기를 안내한 책은 없다. 서점에는 누가 읽어야 하는 필독서 몇 권이니, 글읽기 길라잡이라는 책들이 여럿 나와 있지만 판매를 부추기는 잇속의 편집술을 보여주는 데 그친다. 무엇을 읽으라는 책은 많지만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관해 시작과 과정을 차근차근 밟으며 결과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또한 글을 읽으며 글쓴이의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무릎을 치는 고갱이와 만나게 된다. 독자의 손을 잡고 글의 비경 속으로 끌기도 하고 혼자 던져두기도 하면서 관점, 근거, 상황, 느낌 등 여러 방면으로 돌려봄으로써 읽기의 깊이를 맛보게 한다. 물음에 답하다 보면, 그간 뭉뚱그려 어리벙벙하게 읽거나 윤리적 기준을 떠받들며 관점을 뒤섞어 읽었음을 알게 된다. 과거 「현이의 연극」을 가르친 경험을 떠올린다. 수필로 갈래를 지으면서도 현이가 주인공인 소설의 사건처럼 받아들여 현이를 경험의 주체로 해석하는 참고서의 주제를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글의 주체는 주인공 ‘현이’가 아니라 글쓴이 ‘나’라는 수필의 진리를 놓치고 현이의 행동과 관점을 중심으로 살핌으로써 엉뚱한 주제에 도달한 것이다. 이 책은 잘못된 관점으로 생긴 잘못된 이해에 일침을 놓는다.

또한 글을 야트막히 읽는 습관으로 미처 들여다보지 못하고 발 디뎌보지 못한 문제를 제시하여 글의 깊이를 맛보게 해주기도 한다. 무엇인가 찜찜한 내용을 두고도 그냥 넘어가려는 독자를 끌어당겨 하나하나 밝혀 가려내는 물음을 던진다. 물음을 해결하고 나면 환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친구를 한 명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진수는 역시 글의 내용을 파헤친 예리한 물음들이다. 글에 따른 물음들은 골똘히 생각에 머물도록 하면서 명료하고 올바른 답과 설명을 제시한 것들로 겉 읽기에 머물지 않도록 분석하여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 물음들은, 글쓴이의 관점과 의도 자체가 문제점을 지녀 글 속에서 상충된 오류를 낳았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또 독자가 읽어낸 주제가 글쓴이의 관점을 잘못 파악하고 오독한 사례임을 비판하기도 한다.

국어교사인 나에게 이 책은 글읽기를 지도하는 길잡이다. 글읽기를 가르칠 때 겪는 어려움 하나는 읽기의 길을 알려줄 적합한 작품을 찾는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깊이 읽도록 생각을 끌어낼 물음을 찾는 일이다. 어떤 글을 어떻게 묻고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할 때 이 책을 만났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글읽기를 가르치기 위해 손에 가까이 두는 책이다.

수필은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알기에 좋은 글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읽고 나의 생각을 견주어 보며 세상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공부를 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수필을 바르게 읽는 일은 결국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르게 이해하는 일이며, 내 삶을 바르게 견주어볼 줄 아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 일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최시한 지음
카테고리 문지푸른책,밝은눈 시리즈 | 출간일 2016년 7월 25일
사양 변형판 160x223 · 376쪽 | 가격 14,000원 | ISBN 9788932028828

최시한

1952년 충남 보령에서 출생,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토리텔링 연계전공 주임, 의사소통센터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소설연구서 『가정소설 연구』 『현대소설의 이야기학』 『소설의 해석과 교육』『소설, 자세히 보기